울릉도 나리분지에서 만난 섬속평원의 감동적이고 평화로운 풍경
늦여름 해무가 가볍게 감싸던 날, 울릉도 북면의 나리분지를 찾았습니다. 섬의 해안을 따라 굽이진 도로를 올라가면 갑자기 시야가 열리며 너른 평지가 펼쳐집니다. 산속 한가운데 이런 들판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멀리서 보면 푸른 산들이 둥글게 둘러싸고, 그 안에 작은 마을과 밭들이 바둑판처럼 놓여 있었습니다. 바람은 부드럽고 공기는 맑았습니다. 나리분지의 중심에 서면, 사방에서 내려오는 산바람이 교차하며 머리카락을 스쳤습니다. 바다섬의 거친 이미지와는 달리 이곳은 온화하고 넉넉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지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울릉도의 또 다른 표정이었습니다.
1. 산길을 따라 도착하는 길
나리분지는 울릉군 북면 나리로, 섬의 중앙부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울릉읍 저동항에서 차량으로 약 30분, 산을 두세 번 넘는 길이지만 도로가 잘 포장되어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나리분지전망대’를 입력하면 정상을 지나 완만한 내리막길 끝에서 갑자기 평지가 나타납니다. 길 양옆으로는 울창한 삼나무 숲이 이어지고, 계절에 따라 푸른 잎과 흰 안개가 섞여 다른 분위기를 냅니다. 주차장은 전망대 옆에 마련되어 있으며, 그곳에서 분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산을 넘어 도착했을 때 느껴지는 개방감이 압도적이었습니다. 바다섬 속에서 이런 대지를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웠습니다.
2. 분지의 지형과 자연 구조
나리분지는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울릉도 유일의 고지대 평지입니다. 약 1만 년 전, 화산 폭발 이후 생긴 칼데라의 일부가 침식되어 형성된 곳으로, 둘레를 따라 알봉과 성인봉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습니다. 분지의 면적은 약 1.5㎢ 정도로 크지는 않지만, 울릉도의 험준한 산지 속에서는 매우 특별한 지형입니다. 중심부에는 논과 밭이 펼쳐져 있으며, 수로를 따라 맑은 물이 흐릅니다. 흙은 검붉은 화산재로 이루어져 있어 비옥하고, 가을에는 수확한 메밀과 감자가 바닥에 말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울릉도의 풍토와 사람의 삶이 함께 만든 조화로운 공간이었습니다.
3. 역사와 생활의 흔적
나리분지는 예로부터 울릉도의 유일한 농경지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조선 시대 문헌에도 ‘섬 가운데 들이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당시 주민들은 이곳에서 곡식을 재배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특히 ‘투막집’이라 불리는 전통 가옥은 나리분지를 대표하는 상징물입니다. 현무암과 삼나무 껍질로 지은 투막집은 겨울의 눈과 바람을 막기 위해 낮고 단단하게 지어졌습니다. 현재 일부는 복원되어 전통 체험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또한 나리분지는 울릉도 개척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으며, 최초의 정착민들이 머물던 자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인간의 삶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공간이었습니다.
4. 평화로운 풍경과 계절의 변화
분지 한가운데 서 있으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 산들이 만들어내는 바람의 흐름과 빛의 변화가 하루에도 몇 번씩 달라집니다. 아침에는 짙은 안개가 들판 위를 덮고, 정오가 되면 해가 비추며 풀잎이 반짝입니다. 저녁이면 산그늘이 천천히 내려와 분지를 감싸며, 공기는 한결 서늘해집니다. 들판에는 메밀꽃이 하얗게 피어 있고, 바람이 불면 파도처럼 흔들렸습니다. 계절마다 풍경이 달라 봄에는 새싹이 돋고, 겨울에는 눈이 들판을 가득 덮습니다. 그 아래 묵직한 흙의 냄새와 습한 바람이 어우러져 자연의 순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용하면서도 생명이 가득한 공간이었습니다.
5. 인근 명소와 함께하는 여행
나리분지 관광을 마친 뒤에는 가까운 ‘알봉전망대’로 향했습니다. 차로 5분 거리에 있으며, 나리분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태하향목관광모노레일’을 타고 해안 절벽 위로 올라가 울릉도의 바다 전경을 감상했습니다. 점심은 북면의 ‘나리분지식당’에서 먹은 산채비빔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울릉도에서 재배한 나물과 된장이 어우러져 진한 향이 났습니다. 오후에는 ‘현포항’으로 내려가 해질 무렵의 바다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산과 들, 바다가 모두 가까운 울릉도의 지형 덕분에 하루 안에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자연박물관처럼 느껴졌습니다.
6.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점
나리분지는 입장료 없이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전망대에는 무료 주차장이 있습니다. 날씨에 따라 안개가 자주 끼므로 오전보다 오후 시간이 시야가 더 좋습니다. 여름에는 벌레가 많으므로 긴 옷을 착용하는 것이 좋고, 겨울에는 눈이 쌓여 도로 통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분지 내부의 농경지는 사유지이므로 탐방로 외에는 출입을 삼가야 합니다. 사진 촬영 시에는 드론 비행 제한 구역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봄과 가을이 가장 방문하기 좋은 시기이며, 해질 무렵 산그늘이 내려앉는 시간대의 풍경이 특히 아름답습니다. 맑은 날에는 울릉도의 하늘과 산이 만들어내는 선명한 색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마무리
울릉 북면의 나리분지는 바다의 섬 안에 숨겨진 또 하나의 대지였습니다. 바람이 산을 넘어오며 들판을 흔들고, 그 위로 구름이 천천히 흘러갔습니다. 거친 바다를 품은 섬 속에서도 이렇게 평화로운 풍경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흙, 바람, 빛—all of them—이 조화를 이루며 자연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사람의 손이 닿았지만, 여전히 자연의 질서가 지배하는 곳이었습니다. 다음에는 메밀꽃이 만개하는 여름 끝자락에 다시 찾아, 하얀 물결이 분지를 덮는 장면을 보고 싶습니다. 나리분지는 ‘섬의 심장 속에 숨겨진 평원’이라 부를 만한, 울릉도의 특별한 국가유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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